선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계획이라면, 생각을 바꿔 갑판위로 나가보는건 어떨까?
서해의 아름다운 섬과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다보면 어느덧 도착 안내 방송을 듣게된다.
굴업도 백패킹의 스타팅 포인트라 할 수 있는 이 해변에서 맞이한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었다.
해안을 따라 무리지어 앉아있는 철새들을 바라보며, 왜 ‘한국의 갈라파고스’로 불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작은 섬이라고 무시했던 탓일까? 생각보다 힘들었던 코스에 적잖이 당황했다.
트레킹 중간 나를 반겨준 꽃사슴과 아름다운 갈대밭을 뒤로한 채, 체력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다.
굴업도 서쪽 끝에 다다르자, 일몰 명소로 손꼽히는 장소이자 이 섬을 백패킹의 3대 성지 중 하나로 만들어준 개머리 언덕이 모습을 드러냈다.
등산할 때는 정상에 오르기 직전이 힘들기 마련인데, 최종 목적지인 개머리 언덕이 내리막길에 자리하여 어쩌면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도착의 기쁨을 잠시 접어두고, 텐트와 타프를 설치하다 보니 한시간이 훌쩍 지났다.
의자를 펼쳐두고 준비해온 맥주를 원샷 해보니 “고생한 보람이 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내가 대한민국 서쪽 끝에 있음을 실감했다.
늘어난 구름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져갔다.
분홍빛으로 물든 하늘이 붉게 변하고, 이내 어두워지는 한시간 남짓을 아무말 없이 바라보았다.
바쁘게 살아온 날들에 대해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위안을 받은 듯한 시간..
한 잔씩 더해진 술기운에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이 쏟아질 때 쯤, 짧았던 하루는 끝났다.